관세무역동향
[통상 현안 체크] "위법에 또 위법" 미 국제무역법원, 글로벌관세 10% 위법 판결 신규
미 국제무역법원, 글로벌관세 10% 위법 판결
무역법 122조 권한 제한 확인 “무역적자와 국제수지 위기는 달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부과한 ‘10% 글로벌관세’가 미국 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았다.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이 해당 관세가 법적 권한 범위를 벗어난 조치라고 판단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또다시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파이낸셜 타임스(FT), 야후 파이낸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미국 CIT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부과한 10% 글로벌관세에 대해 “법률상 승인되지 않은 조치(unauthorized by law)”라고 5월 7일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뉴욕 소재 향신료 수입업체 ‘벌랩 앤 배럴(Burlap&Barrel)’과 미국 장난감 기업 ‘베이직 펀(Basic Fun!)’이 제기했다. 원고 측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수지 위기가 아닌 단순 무역적자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한 것은 무역법 122조의 입법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대1 의견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무역법 122조는 미국의 대규모·심각한 국제수지 적자(balance-of-payments deficits)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이 최대 15% 관세를 150일간 한시적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재 미국 상황이 법 조항이 상정한 ‘국제수지 위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원고 측을 대리한 비영리 법률단체 리버티 저스티스센터(Liberty Justice Center)의 제프리 슈왑 수석 고문은 “미국은 무역적자를 겪고 있을 뿐 국제결제 시스템 위기에 처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은 의회가 명시적으로 위임한 범위 내에서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소상공인들의 연합 ‘위 페이 더 타리프(We Pay the Tariffs)’의 댄 앤서니 사무총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불법적인 관세로 큰 타격을 입어온 중소기업에 긍정적인 소식”이라고 말했고 베이직 펀의 제이 포먼 CEO는 “관세로 장난감을 시장에 출시하는 비용이 증가했다. 이번 판결은 안전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글로벌 제조에 의존하는 미국 기업에 중요한 승리다”라고 말했다. 현재 백악관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논평 요청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활용한 관세 정책이 연방대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이후, 무역법 122조를 새로운 관세 근거로 활용하려던 전략에도 차질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IEEPA 기반 관세 정책이 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이 나온 직후 새로운 글로벌관세 10%를 발표한 바 있다.
다만 CIT는 이번 판결에서 글로벌관세를 전면 중단하지는 않았다. 관세 효력 정지는 소송을 제기한 두 기업에 한정됐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항소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향후 미국 관세정책의 법적 정당성과 대통령 권한 범위를 둘러싼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이 무역법 301조, 232조, 122조 등 다양한 통상법을 활용해 고율 관세 정책을 확대하는 가운데, 법원이 대통령의 재량권 남용 가능성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향후 무역법 301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 미 무역대표부(USTR)는 무역법 301조를 활용한 추가 조사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가 5월 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USTR은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4월 28일부터 29일까지 강제노동 생산품 수입금지 조치 부재 및 집행 미흡을 근거로 60개국에 대한 301조 조사 관련 공청회를 진행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업계와 단체들은 강제노동 문제 해결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301조에 따른 관세 부과를 놓고는 입장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가령 철강·배터리·태양광 업계는 관세를 포함한 강력한 무역조치를 촉구한 반면, 미 대두협회는 추가 관세 조치를 우려하는 등 농림·화학업계는 비관세적 접근을 주장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해당 공청회에서 한국을 증언 대상국에 포함하거나 의견서에 한국을 언급한 미 기업 및 협·단체는 총 38곳이었다. 이 가운데 한국에 대한 301조 조치를 찬성한 곳은 24곳으로 찬성 의견이 우세를 보였다. 특히 철강을 언급한 곳은 14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한국정부의 보조금·정책금융 혜택, 중국산 저가 철강의 우회수출 가능성 등을 근거로 관세 조치를 찬성했다. 다만, 미국 내 대체 조달이 불가한 한국산 특수설비와 장비에 대해서는 품목별 면제를 요청하는 의견도 있었다.
오는 5월 14~15일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번 CIT 판결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일정은 3월 말~4월 초로 거론됐지만, 미국·이란 간 군사 충돌과 중동 정세 악화로 한 달 넘게 연기된 바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나 이란과 원유 거래가 의심되는 업체를 제재하는 등 정상회담 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이에 맞서 중국 역시 지난달 말 희토류 수출통제를 강화하는 추가 규정을 발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이번 CIT의 글로벌관세 위법 판결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력에도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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